이승만 정신이 4.19 정신이라는 궤변

어릴적 제가 다닌 교회에서는 이승만이 너무 늙어서 4훨 혁명의 시위를 자신을 환영하는 시위로 착각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반대하는 시위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물러났다고 했습니다. 부패한 것은 이승만의 측근들이고, 이승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4월 혁명의 전말을 알게 되고 교회의 가르침은 잊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 뉴라이트 등 극우 세력은 이런 역사적 날조를 교회 밖에서까지 공공연히 주장하면서 극우 대중 세력화의 밑거름으로 삼고 있습니다.

윤석열 계엄으로 사기가 높아진 대중적 극우 운동을 사회 고위층 극우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입니다. 뉴라이트가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의 최대 결점은 혁명으로 쫓겨났다는 점입니다. 또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역사적 정통성을 4월 혁명에서 찾습니다(황당한 일입니다).

“4·18 정신과 이승만의 노고, 모두 자유 향한 목소리”라는 헛소리. 4.18은 4.19 전날 고대생들이 시위에 나선 날을 말합니다.
이승만을 미화하는 궤변. 출처: 극우 정치인 조전혁 페이스북

이승만의 진면목

이승만은 기회주의자이자, 학살자, 탄핵과 하야로 두 번이나 쫓겨난 독재자이고, 친일파를 재기용하며 한반도를 제국주의 갈등의 최선전으로 만든 민족 반역자입니다.

이승만의 독립운동 경력은 내세울 것이 못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과 만주, 상해에서 고생할 때 혼자 미국과 하와이에서 입으로만 떠들고 미국 대통령에게 조선을 위임통치해 달라는 청원이나 하는 자였습니다. 이 자는 미국 유학 경력으로 1919년 임시정부 대통령에 추대되지만, 상해에서 활동하지도 않았고, 결국 6년만에 탄핵당합니다.

이승만은 영구집권을 꾀한 독재자였습니다. 한국전쟁중 발췌개헌, 이후 사사오입 개헌으로 영구 집권을 꾀했고,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이승만은 학살자였습니다. 이 자는 제주 4.3 학살, 여순 학살, 보도연맹 학살의 몸통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살인자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진보 정치인이었던 조봉암 선생을 정적(政敵)이라는 이유로 사법살인했습니다. 3.15 부정선거에 맞선 마산 고등학생 김주열 열사를 살해했습니다. 이승만의 경찰은 4월 19일 하루동안 서울에서만 130명을 살해했습니다. 4월 혁명 내내 이승만은 수백 명을 살해했습니다.

이승만은 분단을 고착화하고 반공주의를 확립해 이 땅을 냉전 제국주의 갈등의 최전방으로 만든 주범입니다. 미국과 손잡아 단독정부 수립을 주도했고, 반공주의를 앞세우며 친일파를 재기용해서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았습니다. 이 자는 미국도 경계할 정도로 호전적인 북진통일론자로 전쟁 위험을 끊임없이 고조시켰습니다.

역사 날조에 맞서야

역사를 날조하는 이유는 현재의 정치 운동을 위해서입니다. 그저 학술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극우의 이승만 미화 시도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박근혜의 역사 교과서 전쟁, 윤석열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시도 등에서 극우는 국가 핵심에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극우 운동을 뭣도 모르고 선동당한 대중의 운동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핵심에는 교수, 정치인, 행정 관료, 판검사, 군장성, 국정원 간부 등 사회 고위층 인사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고대 4.18 우남 포럼은 그런 상황을 흘깃 보여 줍니다.

이번 포럼 출범식에는 총 172명이 이름을 올렸고, 실제 행사엔 원로 인사와 학계 관계자 등 46명이 참석했다. 당시 학생운동의 주역이었던 이용만(92) 전 재무부 장관, 박강수(87) 전 배재대 총장, 장경우(83) 전 헌정회 부회장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조선일보 인용)

극우는 국가 내부 세력과 국힘 같은 공식 정당, 그리고 거리 운동 세력이 서로 호응하면서 성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대중적 기층 투쟁으로 맞서야 극우를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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