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오역을 발견하는 대로 업데이트하려고 합니다.
15p 두 번째 줄: 감지 가능한 수준의 것
이 변화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또는 고대 팔레스타인 역사의 현실화라는 점에서, 사실이라기보다는 감지 가능한 수준의 것이다.
이 부분은 성서 역사학에 사회과학적 방법론이 도입되는 변화가 있음에도 실질적인 변화는 더디다고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real”을 “사실”로, “apparent”를 “감지 가능한 수준”으로 번역함으로써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됐습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a shift which is more apparent than real in terms of the representation of ancient Israelite history or the realization of ancient Palestinian history.
제 번역은 이렇습니다.
이 변화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또는 고대 팔레스타인 역사의 현실화라는 점에서, 실질적이라기보다는 표면적이다.
27p 위에서 2번째 줄: 과거의 한 관점을 표상
필립 데이비스의 『’고대 이스라엘’을 찾아서』가 성서의 전승들을 역사적 사실로 보는 과거의 한 관점을 표상하는지 여부를 놓고 광범위한 토론이 벌어졌던 것이다.
성서 자체를 역사로 보는 관점에 균열이 난 사례들을 소개하는 부분인데요. 필립 데이비스의 『’고대 이스라엘’을 찾아서』는 ‘역사적 이스라엘’과 ‘성경적 이스라엘’을 분리해 보는 관점을 제시한 책입니다. 그래서 논란이 된 것이죠.
그런데 번역을 보면 이 책이 마치 과거 실증주의 관점을 대변하는 책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성서의 전승들을 역사적 사실로 보는 과거의 한 관점을 표상하는지 여부).
원문은 이렇습니다.
Philip Davies’ In Search of “Ancient Israel provoked a wide-ranging discussion of whether or not the biblical traditions represent a view of the past which accords with reality.
제 번역은 이렇습니다.
필립 데이비스의 『’고대 이스라엘’을 찾아서』가 성서의 전승들이 실재에 부합하는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지 여부를 놓고 광범위한 토론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성서가 있는 그대로의 실재냐 아니냐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27p 밑에서 6번째 줄: 매개변수
실증주의에 대한 도전은 버크 롱이 ‘주요한 스토리'(master story)라고 부른 바로 그것 ― 이스라엘의 과거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설명 ― 의 탐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인 설명은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합리적이고 확고한 것처럼 간주되는 광범위한 매개변수였다.
성서의 내용을 사실로 간주하고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상한 일이지만 이게 “실증주의”라고 불렸다고 합니다)이 주류였지만 이제 도전받고 있다는 부분에 나오는 구절인데요. “광범위한 매개변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they undermine the search for what Burke Long terms ‘a master story’, an authoritative account of Israel’s past, the broad parameters of which seemed reasonably assured until very recently.2
parameters를 컴퓨터 과학 용어인 매개변수로 번역한 것인데요. 그보다는 “한도”로 보는 게 나을 것입니다.
또한 오역까지는 아니지만 authoritative account를 “권위적인 설명”이라고 번역했는데, 제가 보기엔 “권위 있는 설명”으로 번역하는 게 더 낫습니다. 굳이 가치판단을 담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비판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실증주의에 대한 도전은 버크 롱이 ‘주요한 스토리'(master story)라고 부른 바로 그것 ― 이스라엘의 과거에 대한 권위 있는 설명 ― 의 탐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설명은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큰 틀에서 합리적이고 확고한 것으로 여겨졌다.
29p 이든(Eden) 인용문 마지막 문장
독자는 편파적인 텍스트를 포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런 가치들의 현존을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든(Eden)은 한 사회의 가치관이 연구에 필연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모든 텍스트는 부분적 진실을 담은 텍스트(Partial Text. 책의 원 역자는 “편파적인 텍스트”로 번역했습니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텍스트에서 그러한 가치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읽어야 비로소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결론으로 제시된 이 번역은 영 이상합니다. 온전한 텍스트를 이해하려면(“편파적인 텍스트를 포기”) 이런 가치들을 무시하라니요. 이든의 이야기와 정 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오역이죠.
영어 원문은 이렇습니다.
the reader can ignore the presence of these values only at risk of a partial text.
제가 번역해 본다면 이렇습니다.
독자들이 이런 가치들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부분적인 텍스트라는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아직 초입을 읽고 있습니다. 읽으며 업데이트할 텐데, 더는 업데이트할 게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