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반대 시위가 이명박을 끌어내릴까?

지난 6월에 있었던 반값 등록금 집회에서 “촛불이 되살아날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다. 당시 그렇게 쟁점이 폭발하지 않았던 것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지친 마음에서 헤어날 정도로 자신감이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운동을 주도한 한대련이 좀더 과감하게 시위를 밀고 나갔더라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과감하게라는 건, 쟁점 확대, 좀더 분명한 비판 발언 배치 등을 말한다.

여튼간에, 이번 FTA 반대 촛불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2008년 촛불 이후 벌어진 어떤 투쟁들 보다도 더욱 가능성이 있는 투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문 앞 한미FTA 반대 시위(2011.11.05)

민족주의 정서

첫 번째는 민족주의 정서다. 이건 양날의 칼이긴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국주의에 고통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저항적 민족주의 정서가 사람들에게 많이 남아있는 나라다.

제국주의에 의해 받는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이것은 단지 사람들의 착각 문제가 아니다.

97년 IMF, 친일파들의 득세, 효순이 미선이를 깔아뭉겐 미군과 대표적인 불평등협정인 SOFA 같은 것들이 잊을 만하면 제국주의를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한미FTA는 “매국노”, “이완용”, “나라 팔아먹는다”, “불평등 조약” 등의 용어들을 대중에게 환기하면서 쟁점화됐다. 많은 사람들이 한미FTA의 불평등성에 분노한다. 한국 법보다는 상위에 있고, 미국법보다는 하위에 있는 FTA를 보고 사람들은 식민지를 떠올린다.

박원순의 당선

두 번째는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이다.

박원순을 두고 극좌파들 중 일부는 노동자 투쟁 쟁점에 침묵한다고 비판하고(사실이다) 박노자는 중도 우파쯤 되는 사람이 진보 취급받는다고 한탄도 하지만, 그래도 박원순은 민주당 왼쪽에 있고, 사람들이 민주당 왼쪽에서 좌파적 대안을 갈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박노자와 극좌파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도 우리가 발딛고 있는 땅에서 사람들 의식이 왼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게 박원순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비현실적인 운동을 하게 된다. 현실과 접속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박원순 당선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줬다.

“어, 될지도 모르겠는데?” 하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가 뽑은 우리 시장이 우리에게 시청 광장을 개방한대!”

얼마나 벅찬가. 시청 광장에서 오랜만에 시원하게 집회하고 싶어서 나올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11월 5일 집회는 그래서 FTA 집회 중 가장 많은 5천 명이 왔다. 비록 이번에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단체가 후원한 경북 능금 행사 때문에 시청광장에서 집회를 하지 못했지만, 다음 주에는 아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원순은 당선하자마자 공공부문 비정규직 2800여 명 정규직화 검토 지시, 무상급식 전면 실시, 시립대 반값 등록금 지시 등으로 사람들 사기를 높이고 있다.

사람들은 “투표 잘 하니까 되잖아!” 하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면 “우리 편이 시장인데 시위도 해 보자!” 하는 생각을 사람들 할 것이다.

이명박의 레임덕

셋째는 이명박의 레임덕이다.

시위 때 한 고등학생이 “이명박 임기 5년이 50년처럼 느껴졌다” 하고 발언했다. 공감한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이명박의 임기는 이제 3년 10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1년 2개월이나 남은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이 레임덕이라는 사실이다. 내곡동 파문은 결국 이명박이 접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FTA를 통과시키기 두려워하고 있다. 레임덕의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리하면, 이명박이 레임덕이라는 점이 또 유리한 점이다. 사람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직은 모르지만 말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충성심 역시 줄서기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미FTA 반대 시위가 더 확산할 가능성의 근거 세 번재는 그래서 바로 이명박의 레임덕이다.

1%에 맞서는 99% 시위를 비롯한 세계 정세

네 번째는 세계 정세다.

그리스에서는 얼마 전 사상 최대의 시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틀 간의 진정한 총파업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요즘 총파업을 하면 정말 거리에 아무도 안 다닌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작년에 그리스 여행을 갔다. 총파업을 한다고 하길래 한국 총파업처럼 생각하고 밖에 나갔다가 크게 고생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길 들었다.(그리스 여행에서 물씬 느낀 저항 분위기)

2011년 2월 이집트 혁명의 하루 – 이런 투쟁을 통해 대중은 급속히 발전한다. ⓒ사진 호쌈 엘하말라위

아랍 혁명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얼마 전 카다피가 죽었고, 유럽이 승전한 군대처럼 리비아를 지배하려고 하겠지만, 리비아 민중들의 반발도 녹록치 않을 것이다.

이집트 혁명은 노동자 대투쟁과 함께 진행중이다. 이집트 군부는 점점 더 통치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큰 충돌이 불가피하다.

미국에서 60여 년만에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다. 오클랜드에서다. 1%에 맞선 99% 시위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사건이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전 도시에 파업을 호소했다.

단연 이 모든 것들을 상징하는 것은 1%에 맞선 99%를 표방하며 시작한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Occupy WallStreet) 운동이다. 야수의 심장에서 저항이 시작됐고 미국 노동계급이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과장 섞어 말하자면 세계가 미국의 노동계급에 공명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의 일부다. 한국 노동계급 역시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운동을 지켜 보고 있다.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뜨거움을 느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결론

동양적으로 말하자면 요즘은 난세다.

세계는 70년대부터 시작된 불황의 끝에 와 있는 듯하다. 아마 그래도 10~20년은 갈 테지만, 그 속도는 이전보다 훨신 빠를 것이다. 분위기는 훨씬 더 역동적일 것이다.

그 길에서 운동은 쓴 잔도 마시고, 기쁨에 춤추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근댄다. 단지 한미FTA 반대 투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의 초입에 우리는 와 있는 것 같다.

한미FTA에 대해 쓰려고 시작한 글이니까 맺음말을 하자.

가능성은 크다. 물론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아차, 약점을 하나 써야겠다. 야5당의 개입과 민주노동당이 야5당의 안에 끌려다닐 가능성이다.

이정희 대표는 5일 시위에서 “재재협상안을 국회로 들고 오면 그걸 바탕으로 폐기까지 열어 놓고 다시 논의를 하자”고 했다. 재재협상만 주장하는 민주당이나 창조한국당보다는 나은 발언이었지만, (유시민은 폐기를 주장했다.) 뜨뜻미지근한 감이 있다. 그리고 늘 주어는 “우리 야5당은”이다.

지금 야5당의 안은 국민투표인 것 같은데, 그보다는 폐기를 안으로 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지금 한미FTA를 막는 데 선봉이다. 한미FTA범국본의 박석운 대표는 오랜 기간의 단식과 운동 선동을 통해 이런 운동을 호소력있게 만들었다.

응원하면서, 민주당, 참여당, 창조한국당의 안에 민주노동당이 끌려다니지 않게 하자.

그러려면 운동이 성장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기층 압력이 강력해야 한다. 어제 자유발언에서 그런 압력은 많이 등장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젊은 세대를 지배하는 정서였다. 이것도 양날의 칼인데, 정치 그 자체를 불신하는 데로 나가면 안 될 테지만, 정치인들의 온건함에 속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가능성을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한미FTA 반대 투쟁은 이명박을 휩쓸 가능성이 있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사회주의자다. 그래서 이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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