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된지 한 달만인 9월 23일에 텔레그램의 개인정보 보호방침이 국가 기관에 좀더 협조적인 방향으로 개정됐습니다.

개인정보 보호 방침의 원래 내용은 법원 명령을 받은 경우에만 IP 주소와 전화번호를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정된 방침에서는 명령 주체가 법원에서 “관련 사법 당국”으로 넓어졌습니다. 검찰 등까지 포괄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기존에는 “테러 용의자”의 정보만 넘길 수 있었는데, 이제는 “텔레그램 이용 약관을 위반하는 범죄 행위와 관련된 사건의 용의자”로 범위가 크게 넓어졌습니다.
텔레그램 이용약관은 스팸, 사기, 폭력 조장, 불법 음란물, “대다수의 국가에서 불법으로 인식되는 활동(아동 학대(아동 성 착취물을 포함하는 개념)와 마약, 총기, 위조 문서 판매)”을 금지합니다. 기존의 “테러”에서 범위가 매우 넓어진 것입니다.
특히 “폭력 조장”은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서방 국가들에서도 저항을 탄압할 때 명분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예컨대 2022년 마크롱은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가 폭력을 조장한다면서 해산을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다수의 국가에서 불법으로 인식되는 활동”은 범위가 모호합니다. 텔레그램은 요청에 대해 법률적 분석(legal analysis)을 한 뒤 처리하겠다고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개별 기업의 판단에 맡겨져서는 안 됩니다.
기존의 “테러 용의자”라는 표현 자체도 서구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저항 조직을 테러 단체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프랑스 정부가 팔레스타인 연대 조직 해산을 명령했을 때도, 그 조직이 테러를 명시적으로 촉구했다는 혐의가 적용되었습니다.

파벨 두로프 체포는 제국주의 강대국간의 긴장 고조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배경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에서 텔레그램 사용량이 급증한 것과 연관이 있죠. 서방은 왓츠앱이나 다른 메신저들과 달리 텔레그램이 서방의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매우 꺼림칙해 합니다. 서방은 텔레그램이 러시아에 협조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텔레그램이 IP와 전화번호 공개 가능성을 크게 넓히는 방향으로 개인정보 보호방침을 개정한 것은 파벨 두로프를 체포한 프랑스 당국의 요구에 굴복하는 수순으로 보입니다.
텔레그램은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는 메신저인데요. 표현의 자유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로, 개별 기업주의 의지에 의해서 지켜질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참고
👉 〈The Electronic Intifada〉, “Court overturns French ban on Palestine solidarity groups”, 2022년 5월 2일
👉 Gérald Darmanin, Collectif Palestine Vaincra 해산 명령을 내렸다는 당시 프랑스 내무장관의 트위터, 2022년 3월, 9일
https://twitter.com/GDarmanin/status/1501528565954842625
👉 NGO Monitor, “France dissolves anti-Zionist and PFLP-linked Collectif Palestine Vaincra – Main points of the dissolution decree”, 2022년 3월 16일. NGO Monitor는 친이스라엘 조직입니다.
👉 안형우, “독일 경찰에 협조한 텔레그램. 기업에 기대하기는 힘든 표현의 자유 수호”, 2022년 6월 14일
https://blog.naver.com/mytory/222772935432
👉 안형우,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 체포: 인터넷 메신저를 둘러싼 제국주의적 경쟁과 관계있다”, 2024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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